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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강론노트/윤종관 가브리엘

길에서 아무에게나 인사하지 말고 미련없이 인생을 마쳐라

연중 제14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이동 경축
2016. 7. 3. 09:00 하부내포성지 도화담 공소

 

그분 향기에 속아 살아…

 허탕 친 삶…?

 

모든 한국 사제들의 맏형, 김대건 신부님

오늘 국내 성당들에서는 7월 5일의 특별한 축일을 앞당겨서 주일미사로 봉헌합니다.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이동’이라는 명칭으로 오늘의 연중 제14주일의 미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7월 5일의 이 축일은 한국의 모든 사제들이 자신들의 맏형이신 김대건 신부님을 사표로 삼아서 똑바로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축일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일반 교우들을 위한 축일이라기보다는 사제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기도의 날인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의 미사를 본래의 연중 제14주일에 해당되는 미사로 봉헌하면서,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하여 저 자신을 향한 각성 촉구의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3일 동안, 즉 오늘부터 7월 5일까지,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생각과 제가 보아온 선배 신부님에 대한 회고로써 저 자신의 사제생활을 반성하는 묵상을 해야겠습니다.

프랑스인 오일복 신부님에 대한 추억

제가 기억하는 선배 신부님 중에 오늘 특별히 회고해보고 싶은 분은 오일복 신부님이십니다. 그분은 프랑스인입니다. 2004년 6월 28일에 대전에서 만75세를 일기로 선종하신 분입니다. 대흥동 대성당에서 주교님 주례로 대전교구 사제단이 장례미사를 거행하던 날, 그분의 관 앞에 놓인 그분의 영정을 바라보며 느끼던 저의 심정은 12년 지난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분의 영정을 바라보다가 한 후배로서 저 자신 걸어온 사제로서의 지나온 삶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 영정에서 저의 시선에까지 건너오던 그분의 미소는 “끝까지, 사는 날 끝까지, 오로지 그리스도를 따라서!”라고 저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사는 날 끝까지, 오로지 그리스도를 따라서

그분은 프랑스 출신 선교 사제로서 우리 한국에 오셔서 우리 대전 교구에서 만 50년 동안 선교하시다가 선종하셨습니다. 그분이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젊은 나이 25세의 선교사로 이역만리 우리 한국에 오시던 때는 6·25 전쟁 직후였습니다. 전쟁의 참화로 당시 우리 민족의 마음과 삶의 터는 그야말로 황폐 그 자체였던 그 시절, 가난과 질병을 우리와 함께 하면서, 그분은 자신의 청춘을 바치고 우리 애환의 역사에 75세의 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본래 프랑스인으로서의 그분의 성함은 Jean Ollivier 입니다만, 그분은 우리 한국 사람들과 동화되기 위해서 스스로 한국식으로 ‘오일복’이라는 이름을 쓰시면서 한 생을 마치고 그 몸을 이 땅에 묻으신 분입니다.

25세에 선교사로 와서 이역만리에서 보낸 50년의 삶

그 신부님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일컬어 ‘일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농담 삼아 말씀하시곤 했는데, 사실 그 ‘일복’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향기 馥’자를 써서 하나의 향기 즉 ‘그리스도의 향기’만을 좇아서 살겠다는 그분의 삶의 지표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듯이 그분은 사제로서 자신의 한 생을 오로지 주님 뜻을 따르는 삶으로 사신 분이었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향기 만을 좇아서 사셨던

오로지 ‘그리스도의 향기’만을 좇아서 사셨던 그분의 오롯한 마음은, 지나온 우리나라의 전쟁 후 50년간에 그분이 우리 한국 사람들을 위해 바치며 살다가 이 땅에서 세상을 마친 삶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일생을 마친 그 50년이라는 삶이란, 말이 50년일 뿐이지, 그 반백년간의 외로운 투신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파리외방선교회의 내규에 의하면 대략 8년에 한번 꼴로 본국에 몇 개월간 휴가를 갈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고국 떠나 한국에서 선교하면서 50년 동안 여섯 번 정도 고국의 부모형제를 만나보러 갈 수가 있었을 뿐입니다. 장남이었던 그분은 그 50년 동안에 부모님 세상 떠나실 때도, 그리고 형제들 중 몇 명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뒤늦게 소식만 들었을 뿐, 그 아픈 마음을 이역만리에서 홀로 달래며 기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그분은 무엇 때문에 그러한 고독 가운데 인간적 정리(情理)마저 가슴 깊이 묻어가며 살았던 것일까요? 귀양살이 아닌 귀양살이처럼 그렇게 살다가 간 한 삶의 뜻은 무엇일까요?

50년 동안 단 여섯 번 정도 고국의 부모형제에게 갔을 뿐

그분의 관 앞에 놓인 영정을 바라보면서 제가 부끄러워했던 까닭이 있습니다. 정해진 기간을 조건으로 군종사제의 길에 들어서던 젊은 시절, 혹은 외국으로의 유학명령을 받고 떠나던 때, 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찌 그리도 힘들었던가! 그러한 연약한 의지로 저의 소명 수행이란 어쩌면 피동적인 태도였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한 교구 내에서도 지낼만하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하던 때마다 짐을 싸면서 왜 그리 많은 미련까지도 함께 짐에 넣어 싸곤 했던가! 그러한 저의 발자취에는 세속적 현실의 때를 무쳐놓았던 것이지요. 그러한 저의 피동적인 태도와 때 묻은 발자취는 오롯이 추구할 ‘그리스도의 향기’보다는 ‘현세의 악취’로 휘감겨 있는 것이었지요.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현세의 악취로 살았던 부끄러움 

오 요한 신부님, 그분은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사제였다고 그 장례미사에서 주교님께서 강론 중에 회고하셨습니다. 세속적인 욕구와 인간적 본능을 억제하여 자신을 그렇게 채찍질하지 않고서는 언제 어디에라도 자신의 몸을 내놓을 수 있는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루카 10, 3)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은, 그렇듯 자신을 돌보지 않는 투신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투신, 그것은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루카 10, 4) 떠나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인 것입니다. 

또, 오일복 신부님의 수많은 선배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

그렇듯이 오일복 신부님의 선배들이었던 ‘파리외방선교회’의 수많은 사제들이 조선의 박해시절에 이역만리 찾아와서 신자들을 돌보다가 목숨 바쳤습니다. 그 장한 선교사들 가운데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을 특별히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1845년에 강경포로 입국하여, 만21년 동안 조선 땅의 박해 속에서 신자들을 돌보다가,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시고 ‘서짓골’에 묻히셨습니다. 몇 년 동안 외국 유학하던 시절에 그리고 며칠간 외국 여행할 경우에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여 한국음식 생각에 간절해지던 저 자신은, 박해시절 선교사들의 영령 앞에서 더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 무덤 앞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어찌 김대건의 후배를 자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 기억하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앞에서 저는 ‘후배’라 자처하여 얼굴을 내밀 수가 없습니다. 15세의 어린 소년으로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 들어섰던 그분은 이역만리 떠나가 10년 동안 천신만고로 쌓은 수행의 덕을 지니고 고국에 돌아와서, 그 쌓은 덕의 빛을 펴볼 겨를도 없이 1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그분은 그렇게 우리 현세적 안목에서는 그 투신이 순간 무위로 끝나버리는 찰나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리의 칼날에 지금 곧 내 목이 끊어지면 나에게는 이제 영원한 삶이 시작됩니다.”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김대건 신부님의 처형 직전 선언은 오늘 복음서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선언과 같은 것입니다.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 20)하시는 예수님의 선언을 따라 기꺼이 삶을 바치는 것이 그리스도 제자의 길인 것입니다.

오일복 요한 신부님이 보여준 삶

우리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최고의 사표(수호자)이시자 맏형인 김대건 신부님처럼, 오일복 요한 신부님의 50년 한국 선교의 삶은 또한 저 같은 후배 사제들을 오롯이 주님 뜻에 따르도록 그 모범을 보여준 삶이었습니다. 젊음을 지니고 이역만리 찾아왔던 한 생애가 남겨준 것은 오로지 그 늙어 스러질 때까지의 투신을 보여준 몸 하나 이 땅에 묻히고 마는 그것이었습니다. 그분이 한평생 지녔던 것은 오로지 25세 청춘으로 이 땅에 던졌다가 75세로 이 땅에 묻힌 그 몸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분에게서 이 땅에 남겨진 것은 그 어떤 명예도, 그 어떤 재물도, 그 어떤 자손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이 땅에 던져서 쓰다가 소진된 그 보잘것없는 몸 하나 이 땅에 묻은 그것뿐입니다. 하지만, 비록 이 땅에 썩어 없어질 그 몸 하나로써 그분이 남겨 놓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향기’ 그것 한 가지 뿐입니다.

오직 하나의 향기, 일복, 오일복 신부님

‘그리스도의 향기’, 즉 오 요한 신부님께서 자신의 한국식 이름을 ‘오직 하나의 향기’라는 뜻으로 ‘일복(一馥)’이라 하였던 그것처럼, 저 자신도 그 분의 후배답게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서만 걸어가고자 하였던가 하는 반성으로 저의 걸어온 발자취를 그분의 장례미사에서 짚어보면서, 저의 부끄러운 마음은 그분의 영정에서 건너오는 미소에 눈길을 마주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부끄러움으로는 감히 김대건 맏형님의 생애를 저 자신의 입으로 소개하기조차 두려울 뿐입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 14) 


그렇듯 부끄러운 심정인 저의 귀에 오늘 위대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삶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주면서 저를 더욱 부끄럽게 하십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 14) 이러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의 뜻은 곧, 그리스도 제자라면 이 세상을 이미 건너간 사람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세상을 이기셨듯이, 그리스도 제자의 삶이란 세상으로부터 해방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회 없는 길을 가는 신앙

그것은 진정 김대건 신부님의 후배다운 사제의 길이라 할 것입니다. 그분이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 되더라도 그것을 아무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죽을 수 있었던, 그렇듯 초연한 발걸음으로 세상을 건너갈 수 있는 태도가 그것입니다. 자신의 삶 전부가 무위로 끝나더라도 후회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의 신앙이 그것입니다. 속된 말로 허탕을 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우리의 신앙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선 땅에 들어와서 1년 만에 사형장 이슬로 사라진 김대건 신부님 

그리고 함께 조선 땅에 들어왔다가 1년 만에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김대건 신부님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께서 20년을 박해 속에 견디면서, 오로지 신자들을 돌보는 일로 고향에 돌아갈 희망조차 저버리고 견디다가 영원한 고향으로 떠나고, 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조차 남지 않은 ‘서짓골의 빈 무덤’만을 남겨놓았습니다.

오요한 신부님의 삶도 그것이었다

청춘으로 이역만리 찾아와 50년 세월을 고독으로 투신하면서 오로지 그리스도의 향기만을 추구하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고 오 요한 신부님의 삶이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일생을 살아도 남길 것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그리스도 제자의 삶이 그것입니다. 속된 말로 속아 살았어도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한 일생을 사는 삶이 그것입니다.

길에서는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이러한 반성과 더불어 저는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다시 저 자신의 뇌리에 새겨둡니다. 어디를 가든지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 4)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그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 어디로 파견 받아 가든지 거기서 곧 내가 머물러 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서는 어디든 곧 나의 삶을 거기서 미련 없이 마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데서나 몸을 묻을 땅으로 알고 투신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거기서 행복하게 주님의 참다운 제자답게 투신해야 할 것입니다.

미련없이 마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투신이라면 오늘 이 순간의 나의 삶이 곧 “하늘에 기록될”(루카 10, 20) 나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세상에서 허탕 친 삶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허탕 친 까닭은, 그리스도의 향기에 속아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즉 세상으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입니다.

출처. 하부내포성지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