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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강론노트/윤종관 가브리엘

통일을 빌기에 앞서 화해를 모색할 깨달음을 얻어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미사

연중 제12주일 2016. 6. 19. 10:00

하부내포 성지 만수리 공소

 

찢어진 생살, 강력순간접착제로 못 붙여!

 

통일이란 생살 붙여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을 붙이려면 시간이 필요…! 그 시간이란 ‘역사’입니다.

 


37년전 유학시절


37년 전 저의 유학시절 이야기입니다. 로마에서 철학공부를 하던 때의 부끄러운 추억입니다. 세미나의 주제발표논문을 어렵사리 작성하여 그것을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미리 나눠주어야 했습니다. 밤새도록 타이핑해서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식사할 겨를도 없이 시내의 학생전용 복사점에 갔습니다. 그 학생전용 복사점은 프린트 값이 아주 싸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로마 복사점에서 만난 동포


제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저의 논문을 복사하여 계산을 치르고 제본하기 위해 그 가게의 현관을 바삐 열고 나가는데, 건장한 동양인 세 사람과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한국 사람들 같았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 동양인을 볼 때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만, 우리의 눈으로 보면 한·중·일 극동 3개국 사람들에 비해 동남아 사람들의 용모는 확연히 구분되지요. 그런데 우리 한·중·일 극동 3개국 사람들끼리는 우리 눈에도 매우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살다보면 모습이 비슷한 한·중·일 극동 3개국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에 말을 걸어보지 않고서도 일본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거의 본능적으로 식별하게 됩니다.

 

눈에 들어온 김일성 뱃지


그날아침의 그 복사점 현관에서 부닥뜨린 세 사람을 보는 순간 저는 그 본능적 직감으로 그게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저의 그런 순간적 느낌과 동시에 그 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낀 것 같았습니다. 저와 그 사람들 사이에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에 서로 그런 교감이 오고 가는 것이었지요. 뭐라 말을 걸어보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그 사람들의 가슴에 부착된 ‘김일성 기장’(記章․badge)이 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두 발이 현관층계 바닥에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들도 아무 말 없이 저를 노려보는 것이었지요. 그리고는 저와 그 사람들 사이에 서로 얼굴을 돌리고 허겁지겁 지나쳐버리게 되었습니다.

 

빨갱이 세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김일성의 얼굴 사진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는 북한 사람들을 저는 생전 처음 본 것입니다. 그리고는 혼비백산한 것입니다. 급히 시내버스에 오른 제가 어떻게 학교까지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반공을 쇠뇌 교육받은 저로서는 마치 흉악한 악마와도 같은 그 빨갱이 세 사람에게 하마터면 끌려갈 뻔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날의 세미나를 힘겹게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오는 점심때쯤에서야 시내버스 안에서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저 혼자 저의 그 놀란 새가슴을 쓸어보면서 한편 부끄러움으로 제정신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만난 동족에게 말 한마디 걸어보지 못하고 도망친 저의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더욱 어찌하여 길가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자고 그 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 해보면, 그날 아침에 대한 추억 속에서 저의 모습은 너무나 비겁한 것입니다.

 

상종하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던 시절


그날아침의 그 북한 사람들은 아마 로마의 FAO (유엔의 식량 농업 기구 ·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에 주재하던 북한 대표부 직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도 무엇인가 싼값에 복사할 자료들이 있어서 이른 아침에 그 가게에 왔던 것 같습니다. 바쁜 탓에 저처럼 아침식사도 거른 채 나왔을 수도 있지요. 그런 동족끼리 간단하게 아침 식사하러 카페에 가자고 말할 수 없이 서로 혼비백산한 우리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에 주재하던 우리 남한 대사관 직원들로부터 로마의 FAO에 북한 대표부가 주재하고 있으니 혹 거리에서 만나더라도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를 들은 일이 있고, 당시의 유학생 해외 출국 전 당국의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은 바도 있는 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철천지 원수로 남북의 동족이 서로 미워하였다


저 자신의 그 과거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지난 70년 또한 부끄러운 것임을 반성해야겠습니다. 철천지원수로 남북 간의 동족이 서로를 미워하여 왔습니다. 그 70년 동안에 동족상잔의 야만적 전쟁을 저지르고 나서 지속적 적대시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남한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던 두 번의 일을 회상해봅니다. 그때 우리가 감격하며 통일의 문턱에 들어선 것처럼 얼마나 들떴었던가 하는 회상입니다. 그러나 민족의 통일이 얼마나 멀고 먼 길인가 하는 현실인식으로 오늘 우리는 민족분단의 그 길고 긴 어둠의 터널 속에 갇혀있음을 직시하게 됩니다. 이른 바 ‘실패한 햇볕 정책’이니 하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한 정치적 명분은 따로 있고, 핵무기 제조로 국제적 지탄을 받는 북한에 대한 뚜렷한 대안제시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만 살피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남북 간 정치적 으름장과 국민 겁주기 식의 발표를 하다가 깜짝 놀랄 만한 정치적 이벤트가 뉴스로 가끔 전해집니다만, 진정 민족의 화해가 이루어질 날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체제적 통일이란 희망적이지 않다


정치적 시각으로 볼 때 남북한 당국에 의해서건 국제상황에 의해서건 체제적 통일이란 희망적인 현실이 아닙니다. 그 까닭은 지극히 단순한 것입니다. 남한 정권이건 북한 정권이건 정치적 체제를 내어놓고 상대를 포용하거나 흡수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제상황의 이해 당사자들인 주변 강대국들이 우리 민족의 하나 됨을 진정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이념적으로 역시 남과 북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왜냐면 그 이념이라는 것은 서로의 양보할 수 없는 체제를 떠받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변 강대국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망상이다


그래서 저는 정치체제에 의해서나 이념적 논의와 절충에 의해서는 통일을 현실화 할 수 없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국제상황을 직시할 필요는 있지만 주변 강대국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망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순전히 ‘민족의식’으로만 통일을 꿈꾸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민족이다, 동족이다, 한 겨레다 하는 생각은 중요합니다만, 그런 생각은 단순히 서로 피가 같다는 감성적 의식일 뿐입니다. 남북한의 분단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가정의 형제지간은 물론 부모자식 간에도 재산이나 사회적 명분 때문에 등을 돌리고 더 나아가 혈투를 벌이고 서로 죽이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습니까! 하물며 한 가정이 아닌 남북 간의 사이란 오죽하겠습니까? 남북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남한 사람들 사이에 ‘갑’이라는 계층이 ‘을’이라는 계층을 후려 먹는 판국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일 수는 없습니다. 돈 때문에 형제지간도 싸우는 비일비재의 경우를 보면 그렇습니다.

 

민족의식도 해결의 열쇠는 아니다


그러므로 ‘민족의식’이 통일달성의 관건일 수가 없습니다. ‘민족의식’은 다분히 감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사태를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감성에 휩싸이는 병폐현상은, 우리의 고질적인 지역주의나 집단이기주의 등과 같이 민족 내부에서 작용하는 맹목적성에서 그 사실적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너나없이 국민 모두를 위한다면서도 사실적 근거 없이 감성적으로 갈라집니다.

 

경제적 협력관계 또한 지름길은 아니다


그리고 경제적 협력관계만이 민족화합의 지름길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경제적 관계란 이해 타산적 현실 곡선에 흔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용가치에 따라 민족공동체파괴의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돈 때문에 한 가정도 파괴되는 경우를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말입니다.

 

지극히 소박한 길로 나아가야


그렇다면 우리의 민족화해로 가는 현실적 방향은 어떤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지극히 소박한 길입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삶을 소중히 하고, 서로 이웃의 삶을 자기의 것만큼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삶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소박한 방향이 통일의 지름길입니다. 그런 사회란 이웃 사람이 나와 똑 같지 않다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굳이 다른 사람을 나의 생각에로 끌어들이지 않아도, 서로 편한 관계로 사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국정에 대한 진보적 비판을 하면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국민 사이를 갈라놓는 자칭 애국자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민족통일’이란 불가능하다 여겨집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듯이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려야 합니다.”(에페 4, 31)

 

북한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그 쪽의 체제를 무조건 저주하지 말고 인내심으로 설득할 수 있는 방도를 찾자고 말하면 ‘빨갱이’가 됩니다. 다른 체제로 서로를 인정하며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여 서로 편하게 살자고 할 수 있는 정신적 성숙을 요망하면 ‘종북’이 됩니다.

 

종교단체에 좌파 종북세력이 이미 깊숙히 침투해 있다


이즈음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천주교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북한 복음화의식’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위한 식량지원에 대해서 성직자들 중 50%가 찬성하는 반면에 평신도들은 18%가 찬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83%와 평신도들의 50%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하여 잘못한다는 평가를 한다는 조사결과를 보이고 있답니다. 이러한 조사발표가 인터넷에 보도되자 댓글에 다음과 같이 올라온 글이 있습니다. “종교단체에 좌파 종북세력이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는가 싶다.”

 

‘북한 복음화의식 조사’란, 글자 그대로 북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생각을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질문의 답에 대한 결과발표를 보고나서 ‘좌파 종북세력이 천주교 내부에 침투했다’면서 댓글을 쓴 주장에 따르자면 ‘민족의식’이라는 것도 ‘빨갱이 생각’이라면서 규탄되어야겠지요. 그래서 이른 바 ‘햇볕 정책’이라는 것도 빨갱이들을 돕는 것으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 ‘햇볕 정책’이라는 것도 사실은 남한의 우월주의에 기인한 것입니다. 우리 쪽의 에너지로 상대 쪽의 변화를 유도하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대 쪽이 변하기를 기대하지 않고서도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한 하늘 밑에 살자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 19)하고 오늘 우리를 타이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 하늘 아래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같은 민족이라고 꼭 국가가 하나여야 하나


같은 민족이라 해서 국가도 하나여야 된다는 생각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에는 같은 민족이면서 여러 국가로 공존하는 민족이 많습니다. 또 한편 다민족 혼합으로 한 국가를 형성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것이 세계의 역사이면서 오늘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살다 보면 자연스런 필요성에 의하여 국가 체제가 합쳐질 수도 있는 먼 미래의 역사도 기록될 수 있습니다. 찢겨진 살이 붙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익어가야 하는 것이 기나긴 통일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살은 서로 비비면서 체온을 전달하는 가운데 ...


이러한 저의 생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생살을 억지로 붙일 수 있는 순간강력접착제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살은 서로 비비면서 서로의 체온을 전달하는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공감하는 것이기에 생살일 뿐입니다. 그것은 부부가 서로 다른 몸이면서도 한 몸이라 하는 것과 비유되는 것입니다. 서로 각자 고유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의 공감을 살아가는 그 것,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인정하며 서로 각자 사는 것을 공감하는 그런 것이 사랑이겠지요.

 

사랑이란 영웅적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뭐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란 영웅적 행위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 해서 꼭 감성적인(민족적 감성의) 어떤 것만도 아니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국제적 상황)의 인위적 작용이 이루는 것도 아니며, 이해타산(경제적)으로 가능성을 측정할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도 자신을 잘 모르는 것처럼, 사랑이란 측정과 예측을 할 수 없는 어떤 것이듯이, 우리 민족이 화해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체제적(정치적 또는 이념적) 통일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통일작업이란 생살을 강력순간접착제(본드)로 붙이려는 시도일 뿐입니다. 서로 다르면서 공존할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화해’입니다.

 

화해란 내 마음부터 바꾸는 것


‘화해’란 지금 이 자리에서 나 자신의 마음부터 바꾸면서 시작하는 소박한 이웃 사이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작업입니다. 그런 현실인식을 확장시키는 시간을 일컬어 미래로 다가오는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해작업은 분명히 다가오는 미래를 지금 맞이하는 일입니다. 그런 미래는 우리가 계속 벌어들일 수 있는 ‘시간’이요, 그것이 지금 우리가 기록해나갈 우리 자신의 ‘역사’인 것입니다. 해서, 화해는 시간 속에서 하는 것이지 순식간에 붙는 것이 아닙니다. 곧 역사를 필요로 하는 것이 화해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적으로 서로 싸우지 않는 관계만이라도 우선 확립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은 꼭 무력전쟁만을 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무력으로 서로 힘을 견제하고 있는 현실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서로의 힘쓰기를 두려워해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진정한 평화도 아니고 솔직한 화해도 아닌 것입니다. 서로 무력으로 견제하느라고 서로가 얼마나 자신의 처지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런 처지로는 서로가 끊임없는 원수지간일 뿐입니다.

 

분단이 우리의 선택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생각으로 돌아가는 길이 민족의 화해로 가는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남북한 간에 7천만이라는 하나하나가 어느 누구를 대신 할 수 없는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한 사람이 이웃 사람 때문에 불행해져야 합니까? 본래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까닭도 우리 민족 각자들이 선택한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 7천만이라는 각자 각자가 스스로 남쪽과 북쪽으로 헤쳐 모여 선택한 것이 지금의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체제도 이념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이웃의 처지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라면 사심 없이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면 솔직히 이웃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진정 이웃이며 서로 인정하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그래서 이제 진정 서로 다른 이웃으로 함께 살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진정 화해이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될 것입니다.

 

통일을 빌기에 앞서 화해를 모색할 깨달음을 얻어야


그래서 오늘 우리가 ‘통일기원미사’를 봉헌한다면서 사실은 ‘통일’ 그 자체를 꾀하기보다는 ‘화해’를 모색할 깨달음을 주시도록 하느님께 빌어야 합니다. ‘통일’이라면 그것은 생살을 붙이듯이 서로를 합치자는 억지(비현실)일 수 있겠지만, ‘화해’라면 그것은 서로가 자기 생각 고치기를 모색하는 현실적 출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는 나부터 이웃을 인정하는 생각을 찾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런 행위를 하느님 앞에서 시작하는 것이 곧 오늘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입니다.



원문출처. 하부내포성지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