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도행전 4,8-12 | 제2독서 요한1서 3,1-2 | 복음 요한 10,11-18
부활 제 4주일은 성소주일이디. 또 이민의 날이기도 하다. 성소주일이기때문에,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에 특히 해당되는 사제, 수도자, 선교사 등의 증진을 위한 날이다. 마태오복음 9,37-38에 보면, "수확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은 적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라는 가르침에 따라,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 님께서 정한 날이다.
전민동성당 토요특전미사 강론 2015-4-25(토)
4월 26일 부활제4주일(성소주일, 이민의 날)
우리는 다양하게 부르심을 받는다
우리 친구들, 시험기간이죠. 여러분 그거 어렵지 않잖아요. 배운거 푸는 거잖아요. 선생님이 내는 퀴즈를 그냥 푸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늘 (미사에) 많이 안나왔어요, 오늘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입니다.
여러분 성소(聖召)가 뭔지 아세요? 성소가 뭘까요? 성소는 거룩한 부르심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뜻해요. 친구들도 그렇고, 뒤에 계신 부모님도 그렇고 가톨릭을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하시죠?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하느님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러주셨기때문에 내가 알아봐서 이렇게 가톨릭 미사에 오게 된 것입니다.
먼저 부르시고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도록 계속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성소는 그 중에서 특별히 사제나 수도자로 부르심을 받는 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 부르심이 응답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중에 부르심 받은 이가 있나요? 나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분? (묵묵부답인 분위기에) 부르심을 받은 분이 아무도 없나요? 그럼 부르심을 못받으신 분? 안 계시죠? 다양하게 부르심을 받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뱃속에서부터 성당에 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태어나시지는 않죠? 다양한 형태로 우릴 부르십니다. 환시나 특별한 체험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굉장히 일상적 사건으로 우릴 부르십니다. 그런데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도 이와 비슷합니다.
성소주일 맞이해서 동기 신부님 한 분이 강론 준비하면서 성소란 무엇인지를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밴드라는 것에 올렸는데, 답글로 신부님들이 답을 해야 하는데 한 분만 했습니다. 엄마가 가래서. 서울대 가도 돈 안내준다고 해서 신학교 갔다. 물론 사제생활하며 정화가 되겠죠. 저도 답글 달았습니다. 내가 미쳤지. 미치지 않으면 이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맞죠? 여러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묵상 하다가, 신부님이 가라고 해서 갔더니 자연스럽게 사제가 되었고, 친구따라 가는 경우도 있는데, 같이 간 친구들은 다 나갔는데, 혼자 남아서 신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신자나 수도자가 되는 경우에 일상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통해 불러주신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을 부를 때도 그랬습니다. 어망을 손질하는 일상 안에서, 그 일상 안에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라." 그렇게 굉장히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나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굉장히 거룩한 성소를 별로 거룩하지 않은 일상에서 부른다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한순간 한순간 생명의 삶 그 자체가 거룩한 삶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숨 자체가 하느님께서 불어넣어주신 거룩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자로 살지 않아도 그 자체로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제성소나 수도자 성소가 좀 더 특별하다고 말씀드리는 건, 그 인격이 훌륭하다기 보다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성소가 공동체를 위한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성소도 그렇습니다. 성가정을 이루는 것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결혼성소는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둘째가 달랐는데, 이제는 둘다 중요합니다, 첫째가 뭡니까?
첫째 이유는 부부간 사랑과 선의를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뭐죠? 모르시는 거에요, 아시는거에요? 둘째 이유는 자녀를 낳아서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잘 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 성소가 가정과 내 선익, 배우자 선익을 위한 것이라면, 사제나 수도자 성소는 공동체를 위한 성소입니다. 나의 삶이 아니라 공동체 삶을 위해서 독신으로 살기로 합니다, 독신은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결혼성소를 포기하는 겁니다. 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특별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성소나 수도자 성소는 그 양성에 있어서도 굉장히 공동체적입니다. 사실 성소자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생겨납니다. 우린 교중미사를 뒤에서 입당합니다. 그런데 대흥동이나 대른 성당을 보면 회중들 가운데서 입당합는 경우도 있어요. 이 말은 이 공동체 안에서 사제가 나온다는 걸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가 공동체 안에서 생겨나고 양성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체를 위해서 사제나 수도자가 존재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성소에 두가지 형태가 있다고 알았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고 응답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가서 보니 그것 외에 교회의 판단이란 게 있습니다. 이 3단계가 충족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사제로 살아보니 한 단계가 더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의 양성입니다. 그 양성이 잘 이뤄지고 교회가 잘 판단해서 사제로 서품받고 사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공동체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사제의 삶에 있어서 하느님과 관계를 잘 맺으면 잘 살겠구나 생각하지만, 공동체는 양떼들의 삶입니다. 양떼들의 삶은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기도와 사랑이 사제로 잘 살아가고 수도자로 잘 살아가는 좋은 양식과 토대와 밑거름이 됩니다.
예전에 신학교 시절이 방학이 되면 본당으로 가서 신자 교우님들과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 때 교우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기도 했어요. "신학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을 때 여러분 기도와 사랑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리며 제가 기도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말씀을 드린 것인데, 어르신들은 (발언 중에) '포기하고 싶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 다른 얘기는 귀에 안 들어오셨나와요. "우리 학사님, 신학교 나갈라고 그런다! 큰일났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용기있게 일어서게 만드는 좋은 힘과 밑거름이 된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는 뜻합니다. 학사님이 우리 본당에 다섯 분이 계시는 데, 성소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학사님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부탁드리고, 부족한 저와 우리 수녀님들과 주임신부님을 위해서도 특별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여기 친구들 중 신부되고 싶은 분들이 있나요? 결혼하고 싶어요? 제 어릴 적 꿈은 좋은 아빠가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부르심이 어떻게 올 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럴 때 용기있게 응답하는 분들이 잘 되길 바랍니다. 또 수녀님 되고 싶으신 분 계세요? 언제 어떻게 부르실 지 모릅니다, 주님께 잘 응답하시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15-4-25 토요특전미사.
전민동성당 박지순 치릴로 보좌신부님 강론말씀 끝.
당일 신부님 강론을 받아적고 재정리한 노트이므로 실제 말씀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 ㅇ
'성직자강론노트 > 성직자강론종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강림은 참 제자로 거듭나게 한 역사적 순간 (0) | 2015.05.24 |
---|---|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기고 성실히 살아가십시오 (0) | 2015.04.26 |
호들갑을 떨며 예수님을 찾아다니지 마라 (0) | 2015.04.20 |
영적인 삶이란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0) | 2015.04.13 |
이 시대 고통받는 모든 이가 예수님 사랑을 간직하고 살도록 (0) | 2015.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