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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강론노트/성직자강론종합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기고 성실히 살아가십시오

서울대교구 당산동성당

김성만 안드레아 신부님 세례식 축하강론 말씀

2015년 4월 26일(일) 오후 3시



당산동 성당 1층 게시판 사진이다. 2015년 4월 26일 촬영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분들을 한 마음으로 축하하기 위해서 오늘 이 성당에 모였습니다. 오늘 세레 받게되는 분들은 6개월 간 예비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이중 절반은 흔히 말하는 외짝교우로 배우자의 신앙을 보고 특별히 한달반 교리기간을 거쳐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세를 준 이래로 이렇게 남자 형제님 많이 계신 건 처음 보았습니다. 먼저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성실히 준비하며 신앙인 삶 준비하신 예비자 여러분의 노력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예비자를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신 모든 분들과 교리 맡아주신 신부님, 수녀님, 교리교사 여러분의 노고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 노고에 축복해주리라 생각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야 한다

그러면 먼저 여러분과 함께 세례 의미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을 보면, 예수님게서 니코데모와 대화를 나누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 3,5)

정말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여러분은 오늘 세례를 받아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세례는 단순히 천주교 신자가 된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라, 세례를 통해 천주교 신자가 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딸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그래서 새 이름, 세례명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보면 너무나도 유명한 성서구절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3,16)

죄를 씻고 새 삶을 살아야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사랑하는 외아들 내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아들 보내신 건 단죄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예수님 말씀을 믿기때문에 여러분은 세례를 받는 것이고, 세례를 받아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타고 난 원죄, 이 세상에 태어난 뒤로 알게 모르게 지었던 본죄의 삶을 씻고 새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절부터 5절까지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로마서 6,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족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분을 따르는 길

세례를 받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 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하나가 되고,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또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담긴 의미는 이렇게 새롭게 태어나는 여러분은 이제 하느님 아들딸로 이 땅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린 이세상 법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가 주신 사랑의 법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고, 예수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닌 신앙이 인생의 지표가 되고,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세례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신비체라 일컫는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사도 바오로 의 코린토 1서, 12장 1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코린토 1서 12,12)

교회가 건겅해지는 비결

우리의 몸이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도 여러분 개개인으로 구성됩니다. 한 성령 안에 세례받은 우리는 한 성령을 받아모심으로써 한 지체가 됩니다. 모든 지체가 건강하고 제대로 구실을 다할 때 온 몸이 건강한 것처럼, 세례를 받아 교회 일원 된 여러분 각자가 주어진 신앙인의 소명을 성실하게 수행할 때 교회는 언제가 건강할 것입니다.

예언직

이런 교회여야만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면서, 이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썩음을 방지하는 소금 즉,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세례통해 그리스도 몸의 일부로써 마땅히 해야 할 세가지 직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신학적 용어로, 예언직, 사제직 그리고 왕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많은 이를 초대하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느님 복음 선포생활을 일컬어 예언직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과 행동으로 선포하는 하느님 복음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도 되고 심판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면 구원받지만, 거부하면 그 자체로 심판받기때문입니다.

사제직

두번째로 여러분은 모두 사제가 되어야 합니다. 죄많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스스로 하느님께 제사로 바쳐지셨듯이, 여러분 일상 모두를 하느님 아버지께 제사로 바쳐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신앙생활 따로, 일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순간까지도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엄숙한 세례미사에서 농담같은 실화를 하나 긴장도 풀어볼 겸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심초 혹은 분향기도

여러분 요즘 담배 피는 사람은 죄인이 아닌 죄인입니다. 저도 담배를 태우는데, 마땅히 피울 때가 없어요. 예전에는 택시 안에서도, 회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피우던 담배였지만, 요즘은 그러면 큰 일이 나지요. 식당이나 거리에서도 눈총받기가 십상입니다. 저는 심심초입니다. 심심할 때 피니까 심심초라고 할 수 있고, 농담 삼아서 하느님께 분향 기도를 올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로만 칼라를 빼버리면 속일 수 있을까

이런 표현이 저속할 수도 있겠지만, 간혹 담배가 땡길 때가 있습니다. 술이 땡기듯이 말이죠. 어떤 날 교구 행사가 있어서 정장을 하고, 검은 양복과 검은셔츠에 하얀 로만칼라를 하고 길을 가고 있었어요. 그렇게 길을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게 용납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담배가) 땡겨서 한 개피를 물고 몇모금 피고 가는데 찔리더라고요. 아무리 술 담배를 하는 천주교라지만, 길거리에서 신부가 정장을 하고 피는 게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양복 안쪽 로만 칼라를 쏙 빼면 갑자기 신부에서 까만 정장을 입은 일반인처럼 보이려고, 길을 가다가 부끄러워서 칼라를 빼서 주머니에 쑥 넣고서는 신부가 아닌 척을 한 겁니다. 그러면 좀 덜 찔릴 것 같았던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로만 칼라를) 빼고 턱허니 담배를 피우는데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과연 칼라를 뺐다고 신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당시 저한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신부에겐 주일이 장날이고 대목이다

그러면 제가 신부가 되어 첫번째 가장 큰 충격이 뭔거 같아요? 제가 가장 심각하게 느꼈던 것은 "아! 주일은 대목이구나. 남은 휴일이지만, 신부에게는 장날이구나. 죽을 때까지 못 쉬는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충격이 커서, 주일은 휴일의 개념에서 신부가 되어서는 평생 장날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충격이랄까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만) 칼라를 뺐다고 남들이 신부를 못 알아본다고 해도, 제가 신부임에는 변함없는 것과 마찬가지도, 여러분들은 성당에서 기도할 때만 신자인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이요, 만만의 말씀입니다.

코 꿴 신앙인

성당 안에서 거룩하게 기도를 하다가, 밖에 나가서는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뭐가 다를까요? 여러분은 이제 세례를 받음으로써 죽을 때까지 신자가 됩니다, 여러분이 설령 하느님을 잊고 지내다고 해도, 그리고 하느님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커다난 죄중에 빠져있다고 해도 여러분은 이제부터 신자입니다. 속된 말로 코 꿴 겁니다. 빼도박도 못한거죠.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하느님은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십니다. 주말이 되면, 평상시 몰랐던 친구들이 "등산가자!, 이거 하자 저거하자!"라고 하면서 갑자기 이런저런 약속이 많아집니다. 그것은 유혹입니다, 주일미사 빠지면 안되는데 왜 그렇게 약속이 많아지는 것일까요? 바로 그 때 하느님의 길과 인간의 길에서의 선택은 여러분 자유이지만, 책임은 여러분이 져야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한다면

한동안 성당의 모든 예절이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제가 마음 울적하고 심심할 때 중얼거리는 노래가 가스펠송인데,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마음이 지쳐서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도 반드시 여러분을 위해 누군가는 기도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세례를 받을 때 여러분과 함께 하는 주보성인께서는 여러분을 끝까지 이 삶을 사는 끝까지 기도하고, 하느님께 전보하실 것입니다. 

세례명이 '안드레아'인 이유

저는 안드레아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님을 따라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때, 세례명 뭐할거냐고 물으면, 남자들 대부분은 베드로, 바오로, 요한, 야고보 이정도였고, 여자는 80%가 마리아였습니다. 아주 흔한 이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리받는 기간 중에 제가 얻은 감동은 제 자신이 아무런 형제없이 외아들로 자라면서 외로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위대해 보이는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를 제 주보성인으로 택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가고, 소렌토에서 차를 티고 이어지는 해안선을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 아말피 길. 그 아말피 해안도로 중간지점 도시 마을에 있는 성 안드레아 성당에 가면, 제 주보성인인 안드레아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는데, 아 유해 모셔서, 안식년 성지순례 가서 동창신부 중 안드레아 신부 둘이 성당 갔는데 뭉클했습니다. 2천년 된 유해 앞에서 기도하는데 코끝이 찡하고, 안드레아 성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세요? 

(기록자주. 이탈리아 남부의 소렌토 아말피 해안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라는 찬사를 함께 얻었다. 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작가들이 선정한 죽기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장소 50선 중에서 낙원부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다.)



베드로의 경우는 "제발 부탁하건데, 내 몸을 거꾸로 매달아주십시오." 그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를 했고, 동생 안드레아는 그리스에서 순교를 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 총독의 부인이 아플 때였는데, 안드레아 사도의 기도로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총독 부인이 뽕 간거에요, 하느님께 홀딱 바쳤어요. "이제 기도만 할래. 수도자처럼 살겠다"고 하니까, 총독은 사랑하는 마누라가 자기랑 안살겠다고 하는 것이니까 뿔이 났죠. 그래서 (안드레아 성인을) "데리고 가서 죽여!"라고 해서 바닷가 해안 언덕에서 엑스자 형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놔두었습니다. 이틀동안을 못을 안박고, 매달아서 채찍질하고 고통 중에서 죽게 했는데, 죽는 순간까지도, 구경하러 온 이들에게 설교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곳에 온 모든 이들이 사도의 설교에 감화를 받고 신자가 되었으며, 반란을 선동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 죽이면 안된다!"라고 주장하니까, 총독이 "그래 알았다. 살려주마."하고 끌어내렸는데, 그 순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주보성인에게 제가 힘들 때마다 기도를 드립니다. 

힘들 때마다 위기순간에 수호성인에게 기도하십시오.

"당신 삶이 하느님을 닮아서,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전한 것이므로, 모든 이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당신은 얼마나 대단한 빽이 있으십니까!" 부족한 저를 대신해서 청탁하는거죠. 그 때마다 큰 위안을 느낍니다. 여러분 힘들 때마다 위기순간에 수호성인에게 기도하십시오. 아무도 여러분을 위해주지 않는 그런 고통의 순간에도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하느님께서 특히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새 신자 여러분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기쁨도 있지만, 그리스도 신자로 세상 사는 두려움도 있을것입니다. 특히 외짝 교우들은 "내가 한달 나와서 뭘 알겠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신자로 사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살려면 포기해야 할 것, 고민해야 할 것, 칭찬 아닌 욕도 먹고, 주위사람들에게서 변했다는 손가락질도 받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다 버리고 비난하고 욕을 한다고 해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렇게 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고 올 때 하늘에서 내려온 음성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코 1,11. 루카 3,22)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오 3,17)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 

여러분에게 이런 말이 들릴 것입니다. "너희는 내 사랑하는 아들 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딸이다." 세례를 통해 여러분이 앞으로 인생에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지지해주시고, 여러분 편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신앙을 포기하고 싶을 때 이런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아들 딸이란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이어주는 사슬 

끝으로 세례받는 여러분께 부탁을 드립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세상의 유혹과 시련은 더욱 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받아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여러분은 이세상에 살지만, 하느님 아버지께 속한 사람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세상의 온갖 유혹과 시련으로 신앙을 위협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성실하게 기도생활을 할 때에는 어떠한 유혹도 이겨내고 평화롭고 기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여러분과 하느님을 이어주는 사슬이자 여러분을 구원해주는 열쇠입니다. 부디 하루 5분이라도,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기며 성실히 기도하십시오, 



위 글은 서울 당산동성당 김성만 안드레아 주임신부님의 세례식 축하강론 말씀을 

받아적고 재정리한 내용으로,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2015년 4월 26일(일) 오후 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