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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강론노트/성직자강론종합

이 시대 고통받는 모든 이가 예수님 사랑을 간직하고 살도록

토요특전미사는 통상 저녁 7시에 열리는데, 이 날은 세월호 참사 1주기(4.16)를 추모하는 공연이 8시에 있어서, 한 시간 앞당긴 6시에 열렸다. 추모공연을 준비한 청년회는 사진전와 그림 전시회를 성당 1층과 2층에서 함께 진행했고,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활동가들이 오셔서 세월호추모 관련 기념품퍈매전도 함께 마련되었다. 



2015년 4월 11일 토요 특전미사

천주교 대전교구 전민동성당 오후 6시
제1독서. 사도행전 4,32-35  | 제2독서. 요한 1서 5,1-6  | 복음 요한 20,19-31



이 시대 고통받는 모든 이가 예수님 사랑을 간직하고 살도록

(박지순 치릴로 신부님 강론 말씀) 대전 교구청 사목기획국 이영일 야고보 신부님(사목기획국 차장), 새얼센터 차장 남광근 프란치스코 드 살 신부님이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오늘의 복음(요한 20,19-31) 말씀을 나누면,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문 잠그고 숨어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과 함께 제자들의 두려움은 기쁨으로 바뀝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마음이 바뀝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주님이 옆에 계시다는 것으로 평화를 누립니다. 평화는 곧 예수님 당신 자신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참 억울하게도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던 토마스는 속이 너무 상합니다. 전민동 성당 1층에 주보성인 토마스 성인을 보면, "나는?" 하는 억울한 표정 짓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두려움이 기쁨과 평화로 바뀌었는데 토마스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리고 만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2014년 11월 2일 촬영사진. 성당 1층 토마스 상 앞에 서 계신 방경석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님



제가 참 어려보이죠? 제가 소시지, 돈까스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떤 모임에 제가 갔는데, 자기들끼리 돈까스 다 먹고 나면 저는 화가 납니다. 나는? 이렇게 돈가스 못 먹어도 화나는데, 예수님 못 만난 토마스는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그런 토마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십니다. 토마스가 만난 상처는 이 분이 예수님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에 생겨난 다섯 상처는 인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서 생긴 죄의 결과입니다. 동시에 인간을 너무 사랑하신 기꺼이 죽음까지 받아들이신 예수님 사랑의 흔적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만은 고스란히 갖고 부활하셨습니다. 어쩌면 그 상처가 인간에 대한, 제자들에 대한, 모든 인간들에 대한 당신의 상징이 아닐까요? 인간의 죄를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고 감싸주시는 당신 사랑의 표시입니다. 어쩌면 토마스가 그토록 보고 만져보고 싶었던 것은, 예수님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보려고 했던 그 상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고 용서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일 겁니다. "보지 않고 믿는 이는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만지고 싶고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우리 모습이 바로 토마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해서 1년전 아직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사고로 희생된 영혼을 추모하는 미사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많이 아팠습니다. 여전히 아픕니다. 이 아픔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릅니다. 그런데 먼 훗날 이 시대를 돌아보았을 때, 2014과 2015년을 돌아봤을 때 아픔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상처가 상처만으로 남지 않았듯이, 정의를 외치고 사랑을 외치던 기억, 이 사건이 이 사회에 정의를 부르짇었던 열정의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간절히 바란 토마스가 "저의 주님"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고이 모시고 이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은총, 그리고 이 시대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살도록 은총을 청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박지순 치릴로 보좌신부님 강론말씀 끝
2015-4-11 토요일 저녁 6시 특전미사@전민동성당

이 글은 강론 말씀을 필자가 받아적으며 편집된 것이기에 실제 말씀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