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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강론노트/성직자강론종합

영적인 삶이란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영적인 삶이란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2015년 4월 13일(월) 저녁 6시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미사 강론


신학교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석사학위 논문을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때였는데, 어느정도 썼다고 생각하고 지도신부남을 찾아뵈면, 늘 빠꾸를 맞았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무척 잘 준비하고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은 "이건 논문이 아니라 서머리 정리한 것 불과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제 처지에서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인 게 어디인데, 다시 써오라고 하시니까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 썼던 내용을 곁들여서 논문을 다시 작성해서 찾아 갔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왜 아직도 네가 썼던 것에 욕심을 가지냐?. 그러면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없다."

지도 신부님의 말씀에 저는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논문을 작성해서 찾아갔더니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논문은 자신의 생각을 버릴 수록 잘 써진다. 논문이란 것이 꼭 학식을 넓혀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신부님께서는 제 논문을 통과시켜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요한 3,1-8)에서 보면,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최고 학식을 가진 자였지만,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했던 까닭에서 비롯됩니다. 지식이란 영적 성숙과 거리가 멉니다. 영적 성숙이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고, 내 생각과 내 욕심만 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도 머리로만 한다면 우린 영적 체험을 하지 못하고 의무로서만 생활할 것입니다. 

우린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지적인 게 아니라 영적으로 사는 겁니다. 지적인 삶은 내 안에 늘 머물지만, 영적인 삶은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즉 나를 내어주는 삶,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곧 하느님이십니다.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명동성당 월요일 저녁 6시 미사 강론

이 강론말씀은 2015년 4월 13일(월) 저녁 6시 명동성당 미사의 신부님 강론말씀을 받아적고 재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당일 필자가 모르는 강론 신부님의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