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을 통해 볼 때에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인간이
'이중적 표징'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하느님의 자비로우시고 능력에 찬 돌보심의 표징이면서
동시에 죄와 구원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표징
구약성경에서 보여지는 이스라엘 역사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드러내주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집트 탈출 사건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은 당신이 억압자가 아니라 해방자이시며, 약자와 핍박받는 이들의 구원자인 동시에 강력하며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바 있다.
그래서 파스카 축제는 이집트 탈출의 해방 체험을 매년 체험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큰 민속명절에 해당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야훼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미래에도 역시 구원의 역사가 지속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탈출 이후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 바 있다. 이른바 <십계명>이라고 불리우는 율법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사하셨던 것이다. 계명이란 곧 규율이며 율법이다. 하느님께서 법을 세우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직접 세우신 법을 통해서 당신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따라 살 것을 원하셨다. 당신이 원하시는 계약의 공동체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며 인간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서로 형제자매의 공동체로 살아가길 강력히 원하셨던 것이다. 이는 모세가 율법을 두고 한 말에서 드러난다.
이 말씀은 빈말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또한 너희는 이 말씀 덕분에,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가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신명 32,47)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소중히 여겼지만, 특히 왕정시대에 이르러 율법을 소홀하게 대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보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왕정 시대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특히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번번히 망각하였다. 그래서 하느님이 말씀을 부어주며 파견한 예언자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할 때 상징적 행동을 보였다.
예를 들어 호세아는 다른 남자와 놀기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이는 백성의 불충에도 변함없는 야훼의 태도를 표현한 것이었다(호세 3,1~5).
호세아가 집 나간 아내를 찾아오다
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지르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라.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 주어라. 그들은 다른 신들에게 돌아서서 건포도 과자를 좋아하고 있다.” 2 그래서 나는 은 열다섯 세켈, 그리고 보리 한 호메르와 한 레텍으로 그 여자를 사들였다. 3 나는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오랫동안 내 곁에서 지내야 하오. 창녀 짓을 해서도 안 되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어서도 안 되오. 나도 당신에게 그렇게 하겠소.” 4 이스라엘 자손들도 이처럼 오랫동안 임금도 대신도 없이, 희생 제물도 기념 기둥도 없이, 에폿도 집안 수호신도 없이 살 것이다. 5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와 주 저희 하느님과 저희 임금 다윗을 찾을 것이다. 그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려워하며, 주님과 그분께서 베푸시는 좋은 것을 향해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론 유배와 유배에서의 귀환(기원전 587~538)도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하느님은 당신과의 계약을 어기고 배반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셨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고, 다시금 용서를 베푸셨다.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열어두셨던 것이다. 불충한 당신의 백성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셨지만, 다시 그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셨던 것이다. 즉 심판과 자비의 표징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한편, 창조된 세계 전체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다.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은 당신의 능력과 자비를 실제로 드러내신 것이다. 또한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통해서도 창조자의 능력과 자비를 알 수가 있다.
또한 기존의 세계는 단지 창조주의 흔적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창세 3,18), 힘든 노동(창세 3,19), 임신과 해산할 때의 고통과 괴로움(창세 3,16), 살인자에 대한 복수의 법(창세 4,14), 다툼으로 드러나는 인간들의 불화(창세 4,23 이하) 등은 창조된 세계가 인간의 죄 때문에 일그러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그러므로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인간은 이중적인 표징이다. 즉 하느님의 자비로우시고 능력에 찬 돌보심의 표징이면서, 동시에 죄와 구원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표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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