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이 오신 것 자체가 큰 봉헌입니다
2014년 2월 2일 주일 밤 9시 미사
제가 작년 부제때 서울에서 며칠 지냈습니다. 서울의 큰 본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데, 입당성가를 시작하자마자 생각한 게, 헌금이 어디있더라? 였습니다. 그게 왼쪽 주머니에는 3천원, 오른쪽에는 만원이 있었는데요. 그 때부터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3천원을 내자니 창피하고, 딱 만 3천원이 있는데, 만원 하자니, 남은 3천원 가지고는 미사 끝나고 가는 길에 커피 한잔도 할 수가 없겠구나. 이럴 때 차라리 5천원 짜리 한 장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전교구 사람이 굳이 서울에 와서 만원을 낼 필요가 있나 하는 합리화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는 사이에, 신부님 강론은 들리지도 않고 있다가 결국 만원을 내었고, 그렇게 갈등이 싹 걷히면서 성체전례를 맞이하였습니다. 사실, 봉헌이란 것은 쓰고 남은 걸 하는 게 아니고 하느님이 주신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되돌려드리는 것이죠. 봉헌이라면 미사 중 헌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는데요. 그러나 이 미사가 곧 봉헌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봉헌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제는 사제대로 제대에서 고유한 부분이 있고요. 여로분은 여러분의 자리에서 모두 다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앉아계신다고 해서 침묵이 길다고 해도 그것은 다 함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가를 부르고, 침묵 중에는 어떤 기도를 드리는 지 잘 경청하는 거지요. 그렇게 미사는 우리가 신앙생활 뿐 아니라 신자들의 모든 삶의 정점이며 원천인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우리의 모든 삶이 미사를 통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신심활동, 레지오, 성가대 등 모든 활동이 완전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며, 그래서 미사는 정점이며 원천이다. 봉사활동, 단체활동, 신심활동 그런 것들이 정점을 향해 가는 것이고, 성체성사를 통해 얻은 힘으로 다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원천인 것이다.”
그래서 이 미사는 참 대단한 것이죠. 우리끼리 하는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손수 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이 인사말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초기 교회 시절에 승천하신 예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다는 것은 정말 감격스러운 것이죠. 습관적으로 하지만 사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은 초대하는 겁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빌어주소서’하면서, 이곳에서 일치를 이루고, 모든 천사와 성인과 일치를 이루는 잔치이며 축제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다중의 무반응) 이럴 때는 정말 당황스러워요. 제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중의 웃음) 굉장히 기쁘시죠? 설레는 마음으로 오셨죠? (네에~~) 그런데 표정은 안 그래요. 그러니 저 긴장시키지 마시고, 기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주님봉헌축일입니다. 성모님이 정결례를 마치고 아기예수님을 바치는 것입니다. 율법에 따라서 하는 것이지만, 의무감에서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중심으로 참된 봉헌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기쁜 마음으로 봉헌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스스로 당신 자신을 봉헌하시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이 오신 것 자체도 큰 봉헌이고, 인간을 그만큼 사랑하시기에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봉헌생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위한 삶을 살기로 한 모든 수도자들의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본당 수녀님들을 비롯한 많은 수도자들이 하느님 안에서 살며 살도록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소개해드릴 분이 있어요. 오늘 화답송 해주신 분인데, 2월 8일날 봉헌생활 하시기로 한 분입니다. 이형주 야고보 형제님. 잘생기셨어요. 큰 일 났습니다. 왜관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십니다. 샬롬 성가대 단장이신데, 이제 하느님 안에서 사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여러분도 주님을 첫 자리에 놓고 살면서 내 자신을 기쁘게 사는 자신이 되도록 청하면서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4-2-2 주일 밤 9시 미사.
당일 신부님 말씀을 받아 적고 재정리한 노트이므로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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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말미에 치릴로 보좌신부님은 재미있는 말씀을 주셨다.
“어떤 신부님이 요즘 우리 신자분들 중에 밥을 굶는 분들이 많아서 걱정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유를 물으니까, 밥을 굶는 분이 많아서 그런지 ‘한끼 백원 나눔운동’ 헌금도 잘 안걷힌다는 거에요. 여러분이 돈이 없어서 그걸 안내는 건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