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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평화노트/정의와평화특강

2016년 정세미의 막을 내린 연극 - '들리나요'가 들리나요


'들리나요'가 들리나요?


간악하고 야만적인 일본제국주의에 끌려간 한국의 어린 딸들은 무려 20만 명이었다. 그리고 그 중 238명이 살아서 돌아왔고, 그 중에 약 44명 정도가 살아계시다. (수치심을 조장하는 사회분위기로 인해 침묵을 선택한 어르신들을 감안하면 생존자들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매월 행사인 정세미(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와 강연)의 올해(2016년) 12월 마지막 행사를 '강연'이 아닌 '연극'으로 기획했다. 바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들리나요'란 연극을 올린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금주역을 맡은 분은 위의 사진에 나오지 않는 [주선하]란 분이다. 아래 사진 참조

 

2016년 12월 5일(월),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 새얼센터에서 개최된 이번 연극은 위안부를 주제로 하는 젊은 실험극이다. 90분 남짓한 연극은 전라도 지역의 한 마을에 사는 15세 가량의 어린 소녀들의 즐거운 고무줄 놀이로 시작한다. 

소녀들의 고향이 전라도라고 알게된 것은 연기자들의 걸쭉한 사투리때문이었다.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천진난만하게 수다를 주고 받는 세 명의 소녀들 모습에서 관객들은 아름다운 강산에서 뛰어노는 이 땅의 어린 딸들의 건강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생동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연극은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1942년과 1943년 그들이 잡혀가서 겪었을 고초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의자에 앉은 두 소녀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두 소녀상이 특별하다. 세 명의 소녀 중 생존하지 못한 두 명의 어린 여인들이 소녀상을 연기하는 것이다.


대전시청 앞 평화의 소녀상, ​시민 2,377명이 성금과 대전시의 지원으로 2015년 3.1절에 세워졌다. 


그렇게 연극은 일제시대의 위안부로 끌려가던 시절의 전후 정황과 현재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정부의 분위기를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일본군 장교가 등장하여 "하루에 80명"의 일본군 병사를 받으라는 명령 앞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초를 미루어 짐작하게 만들고, 한국과 일본의 두 정상이 함께 등장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면서 소녀상의 철거를 주장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위안부 생존자 어르신들은 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연극은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들리나요'란 제목은 말 그대로 '들릴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면서도, 여전히 '들리지 않는' 미완의 이야기로 남아있는 것이다. 


왼쪽부터 금주 역할의 주선하, 복순 역의 김한봉희, 간난 역의 박근화
이 분들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극의 완성도가 한층 더 빛을 발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진실을 알아달라고 말할 뿐이다. 연기자들의 호흡은 조화를 이루었으며, 아프고 슬픈 이야기 중간 중간에 건강한 15세 소녀들의 입담이 섞이면서 눈물을 빼면서도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연극은 별다른 무대 설치없이도 연기자들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을 압도한다. 게다가 이야기 구성에서 어떤 강요도 없다. 애국심을 요구하지도 않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권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가 '들리냐고', '한번만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할 뿐이다. 권장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지만, 우리는 분노할 수 밖에 없다. 20만의 이 땅의 소녀들. 그리고 그 중에 수많은 소녀들이 중학생에 불과했던 아이들이 전쟁터에서 5분에 1명씩 하루에 80명씩 남자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당했다고 상상해보라. (하루에 300명을 상대했다는 증언도 있다!) 

임신을 했을 경우, 둘 중 하나의 목숨을 선택해야만 했다. 자신이 죽거나, 아기를 죽이거나. 어차피 일본놈의 자식인데, 살려야 하나, 여중생들이 고민하기에 너무 비현실적이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졌던 것이다. 


모든 이들의 연기가 훌륭했다. 특히 주인공 세사람의 소녀들로 등장한 이들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끝으로 이들의 공연이 전국의 이곳 저곳에서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이들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고, 무대 설치 과정이 단순한 편이어서 초청비용은 합리적이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학이나 공공기관의 인권단체, 성희롱-성폭력예방단체 등에서 초청공연을 펼친다면 좋은 기획이 될 것이라는 추천글도 함께 남긴다. 왜냐하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