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사회교리주간)
2015.12.6 전민동성당 주일 밤 9시 미사 강론
주님이 태어나실 자리를 만드는 것이 대림절의 자세
우리를 통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도록
오소서 성령님! (교중. 새로 나게 하소서.)
지난 주는 제가 꾸르실료 교육에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 또 어쩌다보니 밤미사를 보좌신부님께 떠넘겼죠. 그래서 지난주 한주 박 신부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죠? 저는 (박지순 치릴로) 보좌신부님이 고생을 하셨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른 신부님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본당 신부가 없으면 보좌 신부가 왕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덜 미안하기도 합니다.
남성 159차 꾸르실료에 다녀온 방경석 신부님을 환영하는 자리. 우측은 박지순 치릴로 보좌신부님.
출처: 2015년 11월 30일 전민동성당 홈페이지 본당행사사진
어쨌든 교육 잘 받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대림 제1주일에는 꾸르실료를 받으며 미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림 2주일에 여러분을 뵈니까 무척 오랫만에 뵙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오늘은 대림 제2주일입니다. 2주일에는 항상 세례자 요한의 말씀을 듣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 3,4~6)
세례자요한은 '길을 내어라. 산은 깍고 길을 내라는 광야의 외침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날을 인권주일로서 지냅니다. 인권주일입니다. 그리고 인권주일부터 시작되는 그 주간을 사회교리주간으로 정했습니다. 사회교리주간! 그러니까 길을 내는 것과 산을 깍고 계곡을 메워서 주님께서 오실 길을 내라는 것은 어쩌면 인권과 관련된 것으로 교회가 해석하는 거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 오시는 곳, 그것은 어떤 건물이나 네비게이션에 표시된 엑스포로 482번지 장소가 아닙니다. 여기거 어디죠? 전민동 성당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곳은 거기가 아니고,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안에 주님께서 오실 수 있도록 그런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태어나실 자리, 이것을 만드는 시간이 바로 대림절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태어나실 자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가 대림절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첫째로는 대림절을 정말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이고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셋팅하는 시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대림절을 피정하는 시간으로 맞이하자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번 주가 인권주일이면 다음주는 자선주일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주님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을 지내는데요. 제가 이 '사회교리 주간'의 '주간'이란 용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요셉성월'이나 '위령성월'같이 무슨 무슨 '성월'은 있지만, '주간'을 기념해서 지내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거 같아요. 일치주간, 성서주간, 그리고 또 뭐가 있죠? 그리고 사회교리주간 언뜻 생각해보니 그래요. 그만큼 사회교리주간이란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교리는 어떤가요?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다른 부분에 나온 것들은 그냥 신앙 안에서 생활하면 되는 것이지만. 시회교리는 교회 밖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의사를 표현하는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사회교리에 대해서 교회가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전교구 주보 5면의 사회교리 담화문을 같이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제목은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신부님 담화문 낭독함)
제34회 인권주일 제5회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입니다(창세 1,2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 시기,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평화의 은총이 모든 분들께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대림 2주일’을 ‘인권주일’과 ‘사회교리 주간’으로 정하여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신비의 참뜻을 깨닫고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기념하고 ‘자비의 특별 희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며 사회교리의 의미와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억압받는 이들에게 정의의 물꼬를 열어줌으로써 인류에게 이바지하기를 희망합니다. 사회교리는 이 희망 위에서 인간과 사회를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여 사회, 경제, 정치적 상황을 포함한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인간 자신이 초월적인 존재임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사회교리는 통합적이고 연대적인 인도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의 성찰원리와 판단 기준 그리고 행동 지침을 제시합니다. 그 어떠한 사회윤리철학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이 고발하고 제안하며, 문화적 사회적 계획에 투신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또한 긍정적인 활동을 고무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선의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전쟁과 테러, 난민의 증가 등으로 인간 생명의 고귀한 가치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3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비극적 참사를 비롯하여 4년 반 넘게 지속된 내전으로 이미 사망자가 20만 명이 넘어선 시리아의 내전과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말리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참사로 고귀한 생명들이 숨져가고 있습니다. 북한 형제들의 인권문제도 UN에서 의제로 다룰 만큼 심각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지역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권 상황도 심각합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노동할 권리의 안정성을 해치고 노동자들의 해고를 더 쉽게 하여 비정규직을 늘어나게 만들 법안이 상정되어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이 왜곡된 보도와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 오해되고 폄훼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11월 14일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과도한 진압으로 수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하여 그 중 한 농민이 위중한 상태에 계신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또한 부상당한 경찰들에 대하여도 빠른 쾌유를 빕니다. 과격시위도, 과잉진압도, 편파수사도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와 소통을 위하여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정부는 왜 수많은 국민들이 모였고, 그들이 외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귀를 열고 듣고, 언론은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하기를 요청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권의 수호가 제도적 보완, 사회악의 제거만으로 완성되지 않음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만연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물질만능의 소비주의가 우리의 가치관을 지배하고 성공과 승리가 나눔과 배려의 자리를 대체하는 순간,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인권을 해치고 있음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삶의 순간, 하느님의 신비에 자신을 개방하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탁할 때 그 사랑만이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며 사회의 비리를 고발하고 제안하여 개혁하는 진정한 용기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50주년’을 기념하며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하는 것도 신자 개개인의 회심이 하느님의 자비 앞으로 우리를 이끌고 그 자비만이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적 형제애로 불평등과 빈곤과 불의의 고리를 끊고, 근본으로 돌아가 형제자매들의 나약함과 어려움을 받아들이기를 권고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으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희망을 품고 미래를 바라보게 해주는 용서를 기쁘게 선포하는 자비의 희년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틀 후,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시작되는 자비의 희년과 함께 대림의 은총이 더욱 풍성하게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이 온전하고 완전한 구원에 대한 믿음, 충만한 정의에 대한 바람,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흘러나오며 인류를 참 형제자매로 만드는 사랑을 드러내어 교회 뿐 아니라 인류 사회 전체를 참 정의와 사랑의 지평으로 인도하기를 희망합니다.
2015년 12월 6일 인권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저는 우리가 이 성탄을 준비하면서 그냥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소서"라고 외치는 것만으로 성탄준비가 잘 되겠는가? 그것보다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우리가 더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주님께서 탄생하실 자리를 만드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주님께서 오실 자리. 주님께서 오셔서 관심을 가졌던 곳, 주님께서 오셔서 손잡아준 시람들. 주님은 다시 오셔도 그 모습으로 그런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그런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주님께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오시도록 준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면서 피정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한 우리를 통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 우리가 판공성사를 봐야 하죠. 판공성사와 관련해서는 이런 생각을 해봐요. 주일미사에 빠지거나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잘 못사는 것도 충분한 성사거리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이 시대의 악을 용납하는 것도 성사거리라고 봅니디 이 시대에 악이 존재할 수 있도록 용납하는 것 말입니다.
주교님께서는 담화문에서 불통과 매스컴의 왜곡된 보도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보도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큰 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이러한 교회 의 가르침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겁니다. 지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분명히 반대입장을 취했고요. 이번 담화문을 통해서도 공권력의 과도한 권력남용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황님의 입장입니다. 이러한 교황님의 분명한 입장을 알지 못하고, 시회의 현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편이 된다면, 신앙인으로는 죽어있는 것이다. "깨어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도 고해거리가 된다고 보는 겁니다. 우리가 이 시대 안에서 신앙인의 역할을 잘 못하는 것도 고해거리!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이 아직도 해결이 인되었다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안되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봐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간첩조작사건'이죠. 거기에 동의하거나 그를 간첩이라고 말했다면 그것도 고해거리입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주님을 잘 모셔오는데 도움이 되고, 우리가 이 제대에 구유를 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잎에 주님이 오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그런 대림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짐시 묵상합시다.
2015-12-6 일요일 밤 9시 미사.
전민동성당 방경석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님 강론말씀 끝.
당일 신부님 말씀을 받아 적고 재정리한 노트이므로 실제 말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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